전체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지역본부소식

인천지역본부

인간의 길, 노동자의 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춘애[인천사무부장]
댓글 0건 조회 6,792회 작성일 07-11-07 16:57

본문

미안하다. 
동생들아! 너무 늦게 돌아왔네. 
뒤도 돌아보기 싫었던 
다시는 전봇대를 타지 않겠다고 집어 던졌던 뺀지
2만 2천 볼트 활선 전기 줄을 타고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살아도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외선 전기공
산재보상 포기, 사장놈의 요구대로 각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퇴직금 포기, 사장놈의 요구대로 각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무법천지 건설현장 
일용직 건설 노동자는 이 땅에서 인간도 아니었다. 
미안하다. 
동생들아! 너무 늦게 돌아왔네.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절대 안 된다고 좌절하고 체념했다.
싸워보지도 않고 주저앉고 
전업사 사장 놈들의 교활한 이간질에 
뿔뿔이 흩어져 객지를 떠돌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죽은듯이 일을 했고 
더럽지만 하루벌이 일당직으로 살아야 했다. 
진작에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돌아 왔을 것을 
미안하네, 이제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것 
곱으로 투쟁할 것이네 
오랜 투쟁에, 벌이도 없이 
추석명절 날 빈손으로 돌아가도 
조상제사는 모셔야지, 다녀들 오시게 
투쟁 텐트는 내가 지키고 있을 것이네 
파업투쟁에 조금 늦게 참여한 것 
그래야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아서 그러네. 
여기는 아무 걱정 말고 다녀들 오시게 
잘 지키고 있겠네.
미안하다. 
벗들아, 우리가 진작에 세워야 할 민주노조
일당쟁이 하루벌이에 우리가 견뎌야 했던 
죽음과 맞바꿔야 했던 질기고 모진 세월이었네. 
뼈가 타고 살이 녹아버리는 7천도의 불꽃에 
발목을 잘라내고, 손목을 잘라 내야 했던 
젊은 벗들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가 진작에 세워야 했을 민주노조 
일당쟁이 노동자의 단결의 중심을 세워냈더라면 
우리가 스스로 안전을 지켜내듯이 
2중 3중의 착취의 사슬을 끊어냈다면
2년마다 돌아오는 단가업체 선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해고되는 불안을 떨쳐 낼 수 있다면 
상용직 재계약에 후려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포기하라는 
퇴직금을 포기하라는 
산재를 당해도 치료비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그들의 요구 앞에 
혼자서 어쩔 수 없다고 술로 달랬던 밤이 얼마였던가. 
구름 한 점 없는 폭염에 그래도 우리는 웃었다.
이까지 더위야 일을 해도 덥고, 투쟁을 해도 더운 것을 
밤낮을 내리 퍼붓는 장대비에도 우리들은 웃었다. 
비가 오면 어차피 일을 할 수 없는 것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서 
아이들 학원비에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 하는 집세에 
하나 둘 동지가 떠나가도 우리는 원망하지 않았다.
며칠 객지일 떠나며 미안해하는 동지에게 
몸 생각하며 일하라고, 돌아와 소주나 한잔사고 
투쟁기금이나 많이 내라고 웃으면서 보내주었다.
투쟁에 승리하면 우리는 모두가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고 
투쟁에 승리하면 힘들었던 시간들이 
민주노조를 세워내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힘겹고 어려운 투쟁일수록 그 승리는 더욱 갚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2

민주노총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사장놈은 의도적으로 단체협상을 지연시켰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노동법을 지켜라고 
진정을 하고 고발을 해도 노동청은 외면했다. 
근로계약서와 민주노조 탈퇴서를 놓고 
사직서와 한국노총 가입원서를 놓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렸고 
돈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며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한국노총에 가입시킨 구사대를 동원하여 
텐트를 짓밟고 집기를 약탈하고 
그 야만적인 폭력에도 우리는 민주노조의 시련이라 생각하고 
인간으로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이라 생각했다. 

3
구사대 용역깡패의 폭력보다 
동지들의 외침에 침묵하고 있었던 언론보다 
더 서럽고 아팠던 것은 동지들의 무관심과 외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도, 
간절하게 연대의 요구하는 동지들의 힘겨웠던 131일 
그날도
겹쳐진 일정을 이유로, 다음 투쟁을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던 내가, 우리가, 동지를 죽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외롭고 두렵던 날들 
얼마간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얼마간이라도 투쟁기금을 내야하겠다고 
구리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일당쟁이로 며칠 
전봇대를 타고, 고압선에 매달려 일을 하면서도 
마음만은 두고 온 투쟁의 거리 동지들을 생각했고 
노동자의 이름을 빼앗기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빼앗기고 
일당쟁이로 객지를 떠도는 살아도 이미 죽음 목숨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사장 놈 앞에 
일자리를 구걸해야하는 이미 죽은 목숨
죽은 목숨을 불태워 모두가 살 수 있다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만 같은데........
외롭고 두려웠던 밤이 지나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으로 불러보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아파했던 순간들을 
아! 그러나, 함께 가지 못하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차마 살아 마지막 뵙는 늙은 아버지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끝내 유언이 되어버린 
“누군가가 희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내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는 길,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인간의 길, 
돌아서 흘렸던 눈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작은 배낭에 신나를 넣고 
길을 나선 노동자의 길, 
검게 그을린 한 켤레의 신발만 남겨진 
그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동지여 
누군가의 희생을 막지 못한 우리는 
죄인입니다. 
동지여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