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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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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춘애[인천사무부장]
댓글 1건 조회 8,341회 작성일 08-04-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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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 떨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이다.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작 서울 시내 개봉관 세 곳에서만 상영되고 있다. 

 

매진을 우려해 미리 표를 샀는데 150석 좌석에 관객은 고작 60~70명에 불과했다. 지정좌석에 앉지 않아도 됐다. 여태 가 본 극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었다. 통유리로 된 벽 너머로 아담하게 꾸민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화가 시작되자 유리벽에 커튼이 드리워졌다. 막걸리를 마신 탓에 중간에 화장실에 가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신페인당(아일랜드어로 '우리 스스로'라는 뜻을 지녔다.)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더블린에서 부활절봉기를 일으키고 2년만인 1918년에 마침내 총선에서 승리한다. 이야기는 1920년부터 시작된다. 영국의 억압과 착취는 그치지 않는다. 샌님 아우 데이미언은 런던 병원에 취직할 기회를 얻었지만 영국군의 폭력을 경험한 뒤 친구들과 함께 형 테디가 이끄는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 참여한다. 그들은 물리력의 열세를 게릴라전을 통해 극복한다. 데이미언은 조직 보위를 위해 동족과 배신자를 처단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로 성장해 간다.

 

마침내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지만 IRA는 내분에 휩싸이고 형과 아우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을 인정하는 대신 아일랜드를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로 분단시키고 '자치권'을 준다. IRA는 조약을 지지하는 세력과 거부하는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 사회주의 독립국 건설을 주장하며 총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 타협을 통해 힘을 길러 완전한 독립으로 나아가자는 입장으로 갈리는 형제는 이제 동지에서 적으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처지가 된다. 아일랜드 공화국군과 아일랜드 정규군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7~8년 전에 봤던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 '마이클 콜린스'가 다시금 떠올랐다.)

 

영국군에 맞서 싸우던 IRA 전사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영국군 병영이 내전 당시에도 그대로 사용되어 이젠 서로를 단죄하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아일랜드인들은 희망을 점칠 수 있었을까?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 내전을 치러야만 했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화면에 아른거렸다. 자치권을 얻어 정치, 경제, 종교, 언론, 교육, 무기를 장악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어제의 동지를 향해 총을 쥔 손에 힘을 줘야만 하는 IRA 전사와 아일랜드 인민들의 모습에 해방 후 독립투쟁보다 더 냉혹한 계급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지난 역사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완전한 독립과 인민의 자주를 '이상주의'라고 비판하는 형에게 동생은 자신은 '현실주의자'라고 답할 때, 내 귀엔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가 되자"던 체게바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무엇을 반대하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귀에 익은 대사였다. 그건 '켄 로치' 감독 자신의 말이었다. 지난 여름에 리겔님과 함께 '이매진'을 읽었다. 켄 로치 감독이 스코틀랜드사회주의당(SSP)의 21세기 사회주의 비전을 다룬 그 책을 추천하며 한 말이었다.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우는지를 알기는 쉽지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 훌륭한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그곳으로 갈 것인가? 이 책을 읽고 찾아보자"

 

난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때론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했던 돈키호테가 부럽다.

 

퍼온글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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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애님의 댓글

박춘애 작성일

올해초에 좋은 영화 한편 보기를 외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았던 영화입니다.
그때 보았던 영화의 내용을 생각하며 이글을 읽고 있노라니 또다시 그때 느꼈던 가슴 아픔으로 형과 아우의 서로다른 현실앞에서 보아야했던 알수없는 그 무엇에 울컥하며 막판에 끝내 울음을 터트려야만 했던 기억에 또다시 코끝이 찡해져 오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더 보고픈 영화입니다.
 200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