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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싸움 300일, 조합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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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춘애[인천사무부장]
댓글 0건 조회 6,922회 작성일 08-04-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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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싸움 300일, 조합원의 편지 

 

지난 해 여름, 우리사회 여론을 뜨겁게 불러모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었다. 대부분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이랜드 비정규직 아줌마들이었다. 그들의 기나긴 싸움은 차가운 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며칠 전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300일을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는 열흘 째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공부한다는 아이들,  급식비를 못 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한다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은 억장을 치고 남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랜드 비정규직 아줌마들의 싸움....  그들이 눈물로 쓴 편지를 전한다.

 

<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황선영 조합원의 편지 전문 >


오늘 집회현장에서 입을 파란색 스머프 티를 찾기 위해 서랍장을 뒤졌습니다.

이 파란색 스머프 티는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랜드 노동자들 투쟁의 상징물입니다.


지난여름 이 파란 스머프 티를 벗어놓을 땐 다시 입게 되리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파란 스머프 티를 다시 입는다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난여름 이 땅의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고자 정당함을 부르짖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우리의 목소릴 외쳤습니다. 그런 저희들의 곁엔 늘 우리투쟁을 지지하는 많은 동지들이 함께하셨기에 더욱더 당당하게 결의에 찬 모습으로 ‘투쟁! 투쟁!’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팔뚝질, 그간 관심조차 없었던 투쟁가등 모두 낯설기만 한 우리에게 우리의 울분을 담아내는 팔뚝질과 투쟁가로 만들어 준 힘도 동지들이었습니다. 무참하게 가해지는 공권력 앞에선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시고 처절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대포 앞에선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동지들... 항상 그들이 함께하기에 그 어떤 폭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 이랜드 아줌마들은 스스로를 '스머프'들이라고 부른다. 바로 저 파란티셔츠 때문이란다. 스머프들은 지난 해 장롱 속에 넣어뒀던 그 티를 꺼내입고 거리에 섰다.



그러나 어느덧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300일이란 기나 긴 투쟁으로 인해 저희들은 많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어려워진 생활고로 가족들의 지지도 많이 낮아졌고, 이젠 끝냈으면 하는 가족들의 무언의 압력으로 인해 그 어느 고통보다 저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지난겨울 어느 날 ‘드뎌 전기가 끊어졌다’는 큰아이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전 답문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투쟁일정과 회의를 마치고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촛불하나 켜놓고 공부하고 있는 큰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도 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도 제게 눈길조차 주질 않았습니다. 전 밤새 베개 깃을 적시며 고민했습니다. 진정 나와 우리가족이 쳐해 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지금 당장 먹을거리가 없고 기본적인 삶이 영위되어지질 않는데 이런 가족들의 고통들을 뒤로하고 길바닥에 앉아 투쟁만을 외치는 내 모습이 진정 우리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모습인가...


또한 며칠 전엔 작은아이가 보낸 문자에는 ‘급식비 못 내서 점심 못 먹으면 운동장 수돗가에서 물이나 먹지 뭐...‘하며 제 가슴을 긁어내리는 내용이 담아져있었습니다. 빨리 급식비 내달라는 말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문잘 보내려 맘먹고 한자 한자 찍어 내려가는 그 아이의 고통스러웠을 순간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무너집니다. 전 300일간의 긴 투쟁 동안 나름 강한 결의로 투쟁에 임했었지만 그 순간들만큼은 제자신의 결의만으론 극복하기 어려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 300일간의 싸움... 그들의 가슴을 후비는 아픔과 고통의 눈물은 감출 수가 없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 많은 고통을 딛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한 힘은 ‘엄마, 전기 끈긴 열흘 동안 오히려 집중도 더 잘 됐고, 책도 10여권이나 읽었어요. 하고 말해주는 큰아이의 한마디와 ‘급식비 못 내서 굶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 안 믿었었는데 진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돼서 잔반 없이 먹어야겠다’는 작은 아이의 일기장에 적힌 두 줄 또한, 오늘도 투쟁현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우리 조합원 동지를...저 못지않게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고통감수하고 극복해나가며 서로 어깨 걸고 보듬어 안고 힘찬 팔뚝질과 투쟁을 외치는 밝고 당당한 모습들이 이 자리까지 절 이끌고 와 준 힘이라 믿습니다.

 


 






그보다 더 큰 힘은 우리 이랜드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라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시는 동지들...우리 조합원들 힘들고 지쳐있을 때 용기와 힘이 되어주신 수많은 동지들의  사랑과 관심이 오늘 이 자리에서 동지들께 감사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자릴 만들어주셨습니다.



300일이란 긴 시간동안 흔들림 없이 노동자 탄압하는 자본가에 맞서 당당히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신 동지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주시고 저희 투쟁의 지지자가 되어주시는 모든 동지들의 사랑으로 저희 투쟁 승리하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투쟁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해서 현장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또한 저희 투쟁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 동지들의 단결과 사랑으로 만들어나가며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결실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 동지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월드컵분회 조합원 황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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