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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비스 물류회사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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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일환[울산지부장]
댓글 0건 조회 5,888회 작성일 07-09-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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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의 '세상 읽기' <5>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이중질서사회

 [프레시안 홍성태/상지대 교수ㆍ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최근 현대자동차가 겹경사를 맞았다. 하나는 9월 6일에 정몽구 회장서울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9월 7일에 현대자동차의 노사협상이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무분규로 타결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경사에 대해 커다란 비판이 제기되었다. 사실 이 판결은 한국의 현실은 물론이거니와 미래까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른바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 정몽구 회장의 혐의는 대단히 크다. 비자금 1034억 원을 조성해서 696억 원을 빼돌렸으며, 전체적으로 9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했고, 계열사에 무려 2100억 원대의 손실을 입혔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몽구 회장은 아들 정의선과 함께 2001년에 글로비스라는 물류회사를 설립했다. 50억 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재벌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불과 6년 만에 연매출 2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이로써 두 부자는 4년 만에 1조 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잠시 1조 원이란 어느 정도의 돈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1이라는 숫자 뒤에 0이 무려 12개가 붙어야 1조가 된다. 한번 써 보자. 1조=1000000000000. 이 돈으로 5000원짜리 설렁탕을 사 먹는다면, 200만 그릇을 사 먹을 수 있다. 연봉 3000만 원을 다 모아서 1조 원을 만들려면, 33333년이 넘게 걸린다. 설령 연봉 1억 원이라고 해도, 꼬박 10000년 걸린다. 1조 원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런 막대한 돈을 불과 4년 만에 벌다니, 정말 두 부자는 '돈 신'의 제단에 그 이름을 올릴 만하다.
  
  '돈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벌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따라서 '돈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더 많은 돈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람들은 밤낮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한경쟁을 벌이기 십상이다. '돈 신'은 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멸시한다. 그러니 '돈 신'이 지배하는 세상은 도덕과 윤리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돈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인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 신'이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을 통해 '돈 신'의 전횡을 막는다. '돈 신'의 전횡을 막기 위한 입법과 사법의 책임은 너무나 크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입법부는 재벌만큼이나 문제가 많다. 사실 '정경유착'은 입법부와 재벌의 결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망국적 '정경유착'의 문제를 비롯한 '돈 신'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사법부의 임무는 제정된 법을 충실히 집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는 죽음조차 명령할 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신의 판단을 대신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는 사법부의 생명은 고도의 전문성과 양심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도 있는 사법부에게 형식적 전문성보다는 내면의 양심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무엇보다 양심에 대해 거의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1988년 10월, 탈옥수는 지강헌은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결국 사살되었다. 그는 인질극을 벌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지금까지도 종종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갈수록 '돈 신'의 위세가 등등해지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너무나 잘 보여준 말로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번의 정몽구 회장 판결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이 말을 떠올렸다. 한국의 사법부는 탈옥수 지강헌의 비난조차 아직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이중질서사회'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중질서사회'란 쉽게 말해서 사람들이 법을 믿지 않는 사회를 뜻한다. 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은 엄연히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법을 믿지 않고 사법부를 믿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연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사법부가 이런 문제를 악화하는 중요한 주체라는 점에서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이중질서사회'라는 후진적 사회의 개혁을 사법부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2006년 7월, 강신욱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말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불신이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들이 아직도 이런 말들을 믿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사법부는 재벌을 비롯한 부자들에게 관대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전관예우'의 방식으로 자기들끼리 법을 사유화해서 막대한 부를 챙기고 있기도 하다. 강신욱 전 대법관은 이런 현실을 크게 우려하며 사법부를 떠났다. 그러나 아무래도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정몽구 회장에 대한 판결은 우습다고 해야 할 문제마저 안고 있다. 거대한 불법경영을 저지른 자에게 준법경영에 대한 강연과 기고를 '사회봉사'로 명령한 것이다. 전경련에서 강연을 하라니, 전경련은 '전국경제범연합회'인가? 신문에 기고를 하라니, 반성문을 쓰고 면죄부를 받으라는 것인가? 이 판결은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모든 기업들에게 정말로 커다란 '경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에게는, 아니 국민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런 '흉사'가 아닐 수 없다.

홍성태/상지대 교수ㆍ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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