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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달 1188만원 수입? 뜯어 말리고 싶네요 (2013년 4월, 창간준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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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7,426회 작성일 16-05-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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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1188만원 수입? 뜯어 말리고 싶네요
- 벌크시멘트트레일러 노동자 이야기


 


이정훈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큰 차는 운반비 엄청 받지요?


 


나는 영월, 제천에서 시멘트를 실어 각지의 레미콘 공장으로 운송하는 벌크시멘트(포대에 담지 않고 그대로 출하하는 시멘트) 트레일러(BCT)운전을 한다. 성남에서 덤프 트레일러 기사를 반 년 남짓 탄 걸 빼곤 계속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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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2009년으로 기억하는데 영월에서 아산의 어느 레미콘 공장으로 가는 짐을 싣고 가다 식당에서 1톤 용달차 운전사를 만났다. 빈 벌통을 싣고 자기도 영월에서 아산 가는 길이란다. 이 아저씨가 자꾸 묻는다.
“이렇게 큰 차는 운반비 엄청 많이 받지요?"



차가 크니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 무렵 운반비가 1톤당 1만원이 조금 넘어 26톤을 실었으니 26만 몇 천원이라고 말해줬다(지금도 그렇다). ‘에이 거짓말' 이런다. 정말이라고, 그럼 아저씨는 얼마 받느냐고 했더니 24만 원이란다. 그러면서 운임표를 보여준다. 가로축에 출발지가 빽빽하고 세로축의 도착지와 만나는 칸에 깨알 같은 숫자가 적혀 있는데 영월 아산은 24만 원이 맞다. 참 거시기 했다. 어째서 26톤을 실은 트레일러의 운반비가 1톤 용달차와 비슷할까? 왜 우리에겐 책받침처럼 생긴 운임표 하나 없는 걸까?


 


내가 처음 트레일러 기사를 타기 시작한 게 1993년쯤이다. 기억나는 건 그 무렵 경유가 리터 당 200-300원 대였고 타이어 한 짝이 10만 원, 단양성신양회에서 부천 레미콘 기지까지의 운반비가 1톤 당 1만 2500원이었다. 그 무렵의 운행일보 가지고 계신 분들은 뒤져봐도 된다. 그러나 뒤져보나마나 하나도 안 올랐다. 기름 값이 몇 배, 타이어 값이 몇 배 올랐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물가가 떨어지는 것 봤는가.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이거나 혹은 떨어진 물가가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화물 운송비다.



내가 요즘 다니는 영월-용인 구간을 한번 보자. 편도가 124킬로미터. 상하차 시간 포함 한 번 왕복하는데 6시간. 운임이 1톤 당 9140원, 26톤을 적재하면 23만 7000원이 된다. 이걸 하루 두 번, 25일 운행하면 1188만 원이 된다. 한 회전 당 유류비가 90리터 곱하기 1750원 = 15만 7500원, 곱하기 50하면 4500리터, 금액으로 787만 5000원이 된다. 이게 한 달 매출과 기름 값이 되는데 운반비에서 기름 값을 빼면 계산 편하게 400만 원쯤이 남는다.(사실 이 정도 짐은 요즘 벌크시멘트 운송시장에선 나름‘참한' 편에 속한다)


 


여기에서 차량에 들어가는 소모품, 타이어, 오일, 라이닝, 기타 고장 수리비가 월 평균 120만 원 정도, 이건 4308리터를 땠을 때 정부가 돌려주는 유가환급금으로 메우면 얼추 맞는다. 부가세는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어차피 토해내야 하는 돈이니까. 지입료, 보험료가 월 40만 원, 길바닥에 까는 경비와 식대가 50만 원, 각종 공과금, 분담금, 혹은 과태료 등이 월 10만 원, 이렇게 빼면 수익금이라고 해야 할 몫이 300만 원으로 준다.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사람들


 


여기에 마지막으로 계산해야 할 게 차량 대금이다. 할부가 있는 차량은 할부금(사실은 여기에 차량 감가상각비를 더 빼야 한다), 기타 은행이나 캐피탈에서 대출 받은 금액을 뺀다. 나는 차를 바꿀 때 은행에서 대출 받은 게 있으므로 월 90만 원을 덜어놓는다. 이럼 210만 원이 남는다. 하루 열 두 시간, 주 당 72시간을 일했을 때 이렇다. 그러나 여름 장마, 겨울 혹한기를 합쳐 1년의 2달은 거의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20년을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하루에 용인 두 개씩 한다고 하면 동료들은 웃는다. 부러워서가 아니다. 이거 사실 일도 아니다. “닐니리 빵빵, 놀아가면서 하네, 차 정리하고 다른 거 하지" 이런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차에 큰 고장이 나거나 사고라도 나면 저 수입으로는 복구할 길이 없다. 새 차는 더 머리 아프다. 저 계산 어디에 할부 200-300만 원을 끼워 넣을 여지가 있는가. 수입을 늘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집에 안(혹은 못) 들어가고 몸으로 때우는 것. 그래서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을 차에서 지내는 ‘독사' 같은 인간들이 내 주변에 널리고 쌨다. 나는 한 달 해보고 손들었다. 이러니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덤프, 카고, 컨테이너, 평판 트레일러가 다 거기서 거기다. 이게 대한민국 대형 화물차 운전수의 현실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쥐어 짤 뿐. 나는 이게 더 무섭다. 20년을 돌이키면 우리는 이 길로‘이끌려' 왔을 뿐이다. 그 이정표가‘시장의 원리'나‘보이지 않는 손'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째서 파업 소리만 나오면 뚝뚝 떨어지던 기름 값이 파업만 끝나면 원위치 되는지? 참 노골적으로 짜고 친다. 20년 전에는 10명에 7-8명이 월급기사였다. 나도 월급쟁이로 출발했으니까. 지금은 10명에 9명이 개인 차주가 되어 법적으로는 사장님이 되었다. 내가 월급쟁이일 때 사장님들은 알선업체가돼 이제는 전화기와 컴퓨터 하나만 끼고 번호판 장사에 수수료만 떼면 된다. 대량으로 물건을 주는 지입사(대기업)와 알선업체들 아래 있는 화물차주들은 그냥 죽어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파업을 해서 ‘표준운임제'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노동3권이나 4대보험? 주당 48시간 노동?(주당 40시간이 아니다.) 그런 거 없다. 우리에겐 남의 나라 일이다. 언젠가 아는 동생한테 48시간 노동에 대해 말했더니 얘가 심각하게 이런다.
“그럼 나머지 4일은 뭐 해?" 웃자고 하는 얘기니까 웃어라.



깨어있는 인간의 눈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늘 깜빡인다. 그런데 ‘깜’에서 ‘빡’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가 있다. 눈을 떠보면 차는 몇 백 미터를 혼자 달려왔다. 이게 몇 차례 반복되면 졸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왜? 아직은 별일 없이 잘 지나왔으니까. 이 상태는 이미 졸음이 아니라 수면이다. 그러다 뻑, 소리에 깬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문막 톨게이트 못미처 언덕이 있고 좌로 크게 굽은 길가에 간이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 뒤 옹벽에 길게 긁어 놓은 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별놈의 생각이 다 든다. 졸다가 내가 낸 상처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낸 상처 뿐 아니라 밤새 일하며 달려오다가 졸음운전으로 낸 상처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나는, 계속 달려도 되는 걸까? 혹시 주차 브레이크 당겨야 할 때가 이미 지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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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 공장에 작업을 하기 위해 늘어서 있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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