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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산책 - 노예, 그리고 비정규직의 초상 「노예12년」 (7호,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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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990회 작성일 16-08-0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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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산책 - 노예, 그리고 비정규직의 초상 노예12


박영흠 | 공공운수노조·연맹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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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본 엘렌 드 제너러스가 던졌던 수많은 농담 중에 기억에 남는 멘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엘렌은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한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노예12 >을 언급하며 오늘 우리(시상식장에 모인 사람들)는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감독이 상을 타는 광경을 목격하거나, 또는 우리 모두가 인종주의자가 될 것이라는 우스개를 던졌죠. 일종의 예언이 된 이 멘트 그대로 <노예12>은 오스카 작품상을 탔고, 감독인 스티브 맥 퀸은 오스카를 손에 쥔 첫 흑인 감독이 됐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미국의 흑인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고, 아직도 간간히 등장하는 유명인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그에 합당한 대중의 지탄을 받습니다. 인종주의와 차별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현대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더 이상 피부색이 중심이 아니라는 말일 뿐이죠. 차별은 존재 하고 그것은 빈부의 차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로, 구체화 됐다는 것이 고요. 그래서 노예제를 다룬 영화는 인간애에 바탕을 둔 일종의 멜로드라마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노예12>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일명 자유인입니다. 노예가 아닌 흑인이자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예술인이며 한 가정의 가 장이죠. 이 자유인 솔로몬이 인신매매단에 의해 납치되어 남부의 플랜테이션 목화농장에 팔아넘겨지고 노예 신분으로 12년을 살다가 자신의 자유인 신분을 되찾고 가족과 상봉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간단한 시놉시스를 보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이 있습니다. 솔로몬이라는 자유인은 그렇다 치고 진짜로 노예 신분인 솔로몬 주위의 흑인들은 그럼 어쩌란 말이냐 하는 것인데요. 솔로몬의 계급적 추락이 극명할수록 한줄기의 희망도 없는 다른 흑인들의 운명이 계속 마음에 걸리게 되죠. 이 불편함의 정체는 노예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솔로몬이라는 자유인의 불행만을 다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의 구조 때문에 생기는 혼란함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가 아닌 냉철한 사회파 영화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이라는 자유인이 노예로 추락하는 과정은 마치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나 이유 없이 해고당한 노동자, 자신의 존엄을 해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계급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게 그려집니다. 또한 그 반대의 지점에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흥미로운 농장주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착한 기업주라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 지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오히려 명백한 악당 자본가의 이야기가 덜 불편할 지경이죠. 감독은 최하위 계급으로 곤두박질 친 노동자와 착한 기업주, 나쁜 기업주의 이야기를 노예제도라는 시대적 상징 속에 녹여놓고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냐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아주 감동적으로 처리했을 12년 만에 가족이 상봉하는 마지막 씬을 단 1g의 카타르시스도 없이 잘라내듯 끝내는 방식으로 편집함으로써, 솔로몬은 돌아왔지만 여전히 사회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노예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노예가 아닌제도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이죠. 결국 이 영화는 시스템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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