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역 - ‘초구(初九) 잠룡물용(潛龍勿用)’: 어린 용은 쓰지 말라 (13호,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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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역 - ‘초구(初九) 잠룡물용(潛龍勿用)’: 어린 용은 쓰지 말라
주역의 첫 괘는 중천건(重天乾)이다. 언론에 ‘잠룡’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오는데, 이 잠룡이라는 표현은 주역에서 연유한다. 중천건 괘에서 첫 효에 대한 설명은 ‘초구(初九) 잠룡물용(潛龍勿用)’이다. ‘어린 용은 쓰지 말라’는 뜻이다. 어린 용이라 함은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을 뜻한다. 자기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떠들면 언론에서 잠룡이라고 띄워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잠룡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고 찍어주는 자기 배반(계급 배반)의 투표를 한다. 그러나 잠룡이 세상의 구원자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능력이 없으면서 감투를 쓴 지도자는 대개 오만과 독선에 빠진다. 오만과 독선은 무능과 무대책을 낳는다. 오만과 무능의 숲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첨과 이권다툼뿐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왕은 선조였다. 일본군이 백성을 도륙하며 한양으로 치달을 때 선조는 별점을 보고 있었으며, 조정 대신들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면서 한 것은 백성을 원망하고, 이순신을 질투하고 모함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기 살길만 찾을 때 백성에게 돌아 온 것은 죽음뿐이었다.
병법에 ‘무능한 지휘관은 적군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어디 이것이 나라간의 전쟁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승리한 투쟁에서는 지혜를 배워야 하고, 패배한 투쟁에서는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노동조합의 투쟁에서 간부의 오만과 무능으로 인해 패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에 대한 무지와 간부의 과시욕에서 출발한 투쟁, 승리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임무는 방기하고 개인의 명예와 입지 지키기에 몰두하는 간부가 지휘하는 투쟁에는 패배의 폐허만 남게 된다. 그 폐허 위에는 남 탓과 자기 합리화를 위한 거짓이 난무하고, 함께한 동지와 동료에 대한 모욕이 넘쳐 난다.
노동조합 간부가 항상 준비되어 있을 수만은 없다. 한 두 번은 실수도 하고, 몰라서 당할 수도 있다. 문제는 패배와 실수의 교훈을 어떻게 찾고 배우느냐이다. 간부가 무지하고 오만하면 승리를 위한 대책은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기우제’ 투쟁이 된다. 이기자는 말만 하고,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고, 실천 방침을 세우지 못하는 기우제 투쟁이 길어지면 조합원은 자본에 모욕당하고 짓밟히게 된다.
‘왕관을 쓰려는 자, 먼저 머리 위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간부가 되고 싶은 자는 자신이 그 자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조합원은 간부가 자리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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