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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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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향주[교육부장]
댓글 0건 조회 1,748회 작성일 09-06-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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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04/04/10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학생들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강연을 한 뒤, 질의 응답 시간에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근로자'는 노동법에서 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의 단어로서 "임금을 목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도 매우 간단합니다. 반면 '노동자'는 더욱 폭 넓은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백과사전에서 '노동자' 항목을 찾아보면 노동법상의 '근로자' 의미를 포함하여 "자본주의 발생과 더불어..." 등으로 시작하는 아주 긴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정확한 단어는 '노동자'입니다. 80년대 초, 제5공화국 정부가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행정부서 명칭을 '노동부'라고 붙인 것이나 정부 각 산하기관의 이름이 '노동연구원', '노동교육원', '노동위원회', '노동사무소' 등 모두 '노동'이란 단어만 사용한 것을 보면 '근로'보다 '노동'이 뭔가 더 품격 있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노동부장관도 자신이 '근로부장관'이라고 불리기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이 일본의 노동법 체계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노동’이란 단어를 모두 ‘근로’로 바꾼 것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대응하는 것이 일본의 ‘노동기준법’이고,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 대응하는 것이 일본의 ‘노동안전보건법’입니다. 일본의 각종 자료에서 ‘노동자 천 명당 노동손실일수’라고 표기되는 통계를 우리나라 노동부와 산하기관에서는 굳이 ‘근로자 천 명당 근로손실일수’라고 번역합니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과격하다고 느끼고 '근로'라는 단어를 훨씬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올바른 정서가 아닙니다. '노동'이란 단어를 굳이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북측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북측 사람들이 '근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을 '근로 인테리'라 하고 '노동자'와 '근로 인테리'를 합하여 '근로대중' 또는 '근로계층'이라고 표현합니다.

'노동'이란 단어를 굳이 어색해하거나 과격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눈살 찌푸리며 보는 시각에는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은 공무원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거나 무조건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부와 기업이 즐겨 해 온 것처럼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무원에 대해 정치활동을 금지했던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입니다. 근무시간 중의 선거운동 등을 금지하는 '해치법'을 통과시켜 공무원들의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것이 1939년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법이 개정되면서 주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는 입후보자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시, 정당에 정치자금 제공, 정당 활동 참여 및 특정 정당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 등 정치활동의 자유가 거의 완벽하게 보장됐습니다. 연방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가능한 정치활동의 범위를 매우 폭 넓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밖의 선진국들에서는 일반 공무원들에게 특별히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중·고등학생들과 대화하면서 "10여년 전에는 전교조가 불법이어서 선생님들이 1,600명이나 해직 당했었다"고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어이없어 합니다. 조합원이 10만명이나 되는 전교조가 10여년 전만 해도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됩니다. 불과 몇 년 뒤, 우리는 또다시 "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교조가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이 불법이어서 사람들이 잡혀갔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어이없어 할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공무원인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한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위직 공무원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은 위법행위라며 구속까지 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제가 그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당을 지지했든지 그것은 우리 사회에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활동 자유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다른 선진국들처럼 공무원과 교사에게도 정치 활동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한 단계 발전하는 데에 유익한 영양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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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2007/04/23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기념일로 지키는 ‘노동절(May Day)’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날 대회에서 미국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쟁취 투쟁을 전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매년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들의 기념일로 결정한 지 올해로 벌써 117주년이 됐다.

우리나라의 노동자들 역시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3년부터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 행사를 열어왔다. “신사회 건설”과 “계급적 단결”을 강령으로 내걸고 경성전차종업원회 등 직업별 노조와 소작단체 등 13개 단체, 2만여 회원을 한데 묶어 1922년에 창설된 조선노동연맹회는 1923년 5월 1일 우리나라 최초로 전국 규모의 노동절 행사를 열었고 그 전통은 해방 뒤까지 계속됐다.

미군정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불법단체로 간주하고 1946년 설립된 대한노총(총재 이승만)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1948년부터 10년 넘는 세월동안 노동절 행사는 정치인과 자본가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권은 “잔인무도한 공산도당과 같은 날에 기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날짜를 3월 10일(대한노총 설립일)로 바꾸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그 명칭마저 ‘노동절’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 날짜를 다시 5월 1일로 되돌린 것은 1994년이었으니,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을 지키게 되기까지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5월 1일의 명칭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이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만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다. ‘참여 정부’가 그 작은 흔적조차 지우지 못한 데에는 우리 사회에 그릇되게 만연된 ‘노동’에 대한 몰이해 현상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방송 진행자와 아나운서들도 대부분 '노동절'이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마당에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는 없다.

노동절 행사에 수만 명의 노동자가 모이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무노조 경영’을 ‘일류 경영’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의가 끝난 뒤 “삼성이 무노조 경영으로 일류 기업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라고 당당하게 묻는 학생들이 거의 매번 있다. 이번 기회에 밝히자면, 무노조 경영을 통해 일류 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일류 기업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한시적으로 무노조 경영이 가능한 것뿐이다. 무노조 경영 원칙은 그 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동종 업체보다 월등히 나은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다.

형식상 그룹에서 분리되었지만 무노조 경영이라는 전근대적 경영방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백화점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을 때, 그 백화점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동기를 "경영진은 직원들의 자긍심에 먹칠을 했다. 경쟁업체 백화점에는 체불임금 발생이 없었지만, 우리 백화점에서는 경영 사정을 이유로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던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결국 다른 노동조합 활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복수노조가 합법화되어 한 회사에 여러 개의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무노조 경영 원칙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바람직한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전혀 쌓지 못한 기업의 노사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경영계 일각에서조차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17번째 노동절을 맞아, 무노조 경영을 아직도 훌륭한 경영 방식인양 착각하는 부끄러운 일 하나만이라도 우리 사회에서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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