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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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일 만에 치뤄진 박종태 열사 영결식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것입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
" 날고 싶어도 날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故 박종태 열사 유서 中
“78명이나 되는 생목숨이 해고당했는데 1인 시위마저 철저하게 가로막힌 그 절망의 벽을 죽어서야 훨훨 넘어선 한 사람이 간다”,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힘든 나라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동지가 이제 영영 간다"(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추도사 中)
눈물같은 비가 내렸다. 아이들을 꼭 껴안고 울음을 참아내던 부인 하수진씨도 열사의 시신이 영안실 떠나려 하자 관을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기 까지는 52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78명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삶의 터전이 다시 돌아오기 까지는 한 사람의 목숨과 52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이 나라의 현실이고 노동자란 이름 앞에 특수고용 이라는 네 글자라도 달아야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삶이였다. 그렇게 거대 자본과 싸웠던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20일 오전 대전 중앙병원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열렸다. 열사의 마지막 길을 노동과세계가 함께 걸어봤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만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故 박종태 열사 유서 中
▲ 박종태 열사의 세상 마지막 가는 길을 이끌었던 건 동료들이 함께 짊어진 '노동해방'의 꽃상여였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것입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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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대전 중앙병원에서 열린 박종태 열사의 발인식이 끝나고 고인의 시신이 영결식을 위해 영안실을 떠나려 하자 부인 하수진씨가 열사의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 날고 싶어도 날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故 박종태 열사 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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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촌 어디가?....' 하얀 꽃을 든 박종태 열사의 조카가 눈물을 머금은 채 열사가 잠든 관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78명이나 되는 생목숨이 해고당했는데 1인 시위마저 철저하게 가로막힌 그 절망의 벽을 죽어서야 훨훨 넘어선 한 사람이 간다”,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힘든 나라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동지가 이제 영영 간다"(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 추도사 中)
눈물같은 비가 내렸다. 아이들을 꼭 껴안고 울음을 참아내던 부인 하수진씨도 열사의 시신이 영안실 떠나려 하자 관을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기 까지는 52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78명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삶의 터전이 다시 돌아오기 까지는 한 사람의 목숨과 52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이 나라의 현실이고 노동자란 이름 앞에 특수고용 이라는 네 글자라도 달아야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삶이였다. 그렇게 거대 자본과 싸웠던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20일 오전 대전 중앙병원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열렸다. 열사의 마지막 길을 노동과세계가 함께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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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열사 부인 하수진씨와 딸 혜주가 발인제를 마친 박종태 열사의 유해를 따라 대전 중앙병원 영안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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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구 차량으로 향하는 박종태 열사.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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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 운구 행렬이 대전 중앙병원을 빠져 나와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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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 운구 행렬이 대전 중앙병원을 빠져 나와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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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 운구 행렬이 대전 중앙병원을 빠져 나와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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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 모인 화물조합원들이 '열사정신 계승투쟁 결사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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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의 영결식에 참석한 한 조합원이 추도사를 들으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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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명이나 되는 생목숨이 해고당했는데 1인 시위마저 철저하게 가로막힌 그 절망의 벽을 죽어서야 훨훨 넘어선 한 사람이 간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추도사를 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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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가 평소 즐겨 부르던 '민들레처럼'을 부르던 민중가수 지민주씨도 오열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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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태 열사의 막내 아들 정하군이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유인물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만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故 박종태 열사 유서 中

▲ 박종태 열사의 세상 마지막 가는 길을 이끌었던 건 동료들이 함께 짊어진 '노동해방'의 꽃상여였다. 사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이명익기자/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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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석님의 댓글
한희석 작성일열사여 편히 잠드소서...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열사의 주검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겠습니다..